사회공헌 자료

<사회혁신 포커스 리뷰 6호> 책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


 
책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
송수민

(사)땡스기브 대표

“여러분은 왜 대학에 가려고 합니까?”

10여 년 전, 용인의 한 특성화고 1~2학년 대상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 20여 명을 모집했고, 참여 학생들은 여느 고등학생들과 달리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과 글로 잘 표현했다. ‘대학을 왜 가야 합니까?’는 글쓰기가 현실의 상황 및 고민과 연결되지 않으면 울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지막 주차에 던진 질문이었다. 담당 선생님의 표현대로 ‘학교에서 똑똑하다고 하는 아이들’을 모아 놨으니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러게요, 대학을 왜 가야 하지?”

마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표정, 혹은 그동안 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았을까 당황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던 한 학생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후 다른 학생들이 대학에 가야 하는 여러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오직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던 그 학생의 표정만 각인되어 남아 있다.

 

 

킬러 문항 이슈 속 진정한 사교육

 

최근 수능 킬러 문항이 이슈가 된 원인도 (수용과 사용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사용을 위한 공부’에 초점이 맞춰진 결과와 연관이 있다. 아이큐(Intelligence Quotient) 테스트가 지능이 높은 사람을 변별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안된 게 아니라,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을 변별해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교육의 목적도 다르지 않다.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우열반을 구분해 소수를 변별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교육은 소수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모든 학생에게 발달 단계에 따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공교육을 통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평가 방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야 학교 교육을 향한 신뢰도와 시험의 공정성도 높아질 텐데, 문제 풀이 위주의 사교육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수용으로서의 공부’보다 ‘사용으로서의 공부’로 귀결되는 결과가 이어진다. 특정 주체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과 별개로 대한민국에서 교육 문제가 카오스로 인식되는 이유다. 사실상 킬러 문항과 같은 이슈는 상위 5%를 제외한 나머지 95%의 학생들에게는 무의미한 논의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에 ‘진정한 사교육’ 기관은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어렵다. 당장 성적과 관련이 없는 독서, 글쓰기, 연극, 음악, 미술과 같은 활동은 그저 초등학교 저학년, 중학년 시절 경험 삼아 체험하는 활동으로 인식된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과 폭넓은 사고의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평가 결과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 환경에서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이 경험하고 얻게 되는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희생과 헌신, 챈스기브

 

사단법인 땡스기브는 ‘진정한 사교육’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작은도서관을 건립하고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등의 교육 문화 공간을 지원하고 있다. (사)땡스기브가 표방하는 사교육은 공교육의 교육 과정을 따르며 시험 성적을 향상시키는, 사실상 공교육의 연장인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이 미처 다 다룰 수 없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가정의 아이들에게 기회를 선물하고자 한다. 작은도서관에서 ‘작은’을 ‘도서관’과 붙여 사용하는 이유는 공간이 작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과 비교하면 장서 수와 제공 서비스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만 공공도서관이 할 수 없는, 작은도서관만의 차별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희생과 헌신이다.

(사)땡스기브는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무렵 인천 남동구 만수5동에 30평 규모의 작은도서관을 건립했다. 지역 특성상 부모의 사망, 이혼,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등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급식을 꼭 먹어야 했던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굶어야 했고, 온라인으로만 선생님을 만나는 상황에서 당연히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작은도서관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기 전, 우선 방치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빈 공간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공을 차며 놀았다.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었다.

 

공간을 리모델링한 후에는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챈스기브(Chance give)’라는 이름으로 무료 공부방을 운영했다. 이름 그대로 기회를 선물한다는 의미였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한 주에 두 번, 하루 다섯 시간씩 작은도서관 아이들과 1:1로 영어,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진행했다. 당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와 무료 공부방 봉사를 병행했던 한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원에서는 부모님들이 지불한 학원비에 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챈스기브 무료 공부방 봉사는 가르침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속도를 맞출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매번 저를 만날 때마다 반겨주는 게 참 감동적이었어요. 학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변화가 요구되는 작은도서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작은도서관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봉사자들과 도서관 공간에서 북 캠핑을 함께하고, 소극장을 대여해 연극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대학생 봉사자들의 전공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에게 진로 특강 시간을 마련하고, 독서감상문대회, 책 놀이, 그림책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도 열렸다. 관장님, 봉사자 선생님들, 담당자들의 관심과 돌봄이 이어지니 아이들에게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 성적이 올랐을 뿐 아니라 교내 독서감상문대회에서 아이들이 수상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훈훈한 미담으로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서서히 끝나 가면서 작은도서관 활동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대학생 봉사자들도 학교 수업이 대면으로 전환되면서 더 이상 봉사를 할 수 없었고,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발길도 하나 둘 끊겼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은 문제 풀이에 초점을 맞춘 학원에 다니기 위해 도서관을 떠나기도 했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단체가 추구하는 진정한 사교육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이 느껴졌으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지속적인 봉사자 확보와 운영비 지원 등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과제이기에, 작은 단체가 독립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가난과 질병으로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을 돕는 사업들에 비해, (사)땡스기브의 작은도서관 사업은 상대적으로 덜 시급해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꾸준히 소외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다 보면 반드시 뜻있는 개인과 기업, 단체와 연결될 것이라 믿고 있다.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새로운 교육 문화

 

지금 (사)땡스기브는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 속 감독의 의도와 시대 가치관을 분별하며, 영감 받은 내용을 음악과 사진, 만들기로 표현하면서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 책을 읽고 쉼을 누릴 수 있는 아동·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읽고 쓰는 행위가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경험할 것이고, 머릿속에만 머무는 지식이 아닌, 생생하고 다양한 사고를 직접 표현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아이들의 글을 웹집과 출판물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실제적인 문해력 향상뿐 아니라 자아효능감, 만족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제 시대는 창의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존재를 원하고 있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외국계 회사에서는 ‘역량’을 긍정성, 적극성, 전략적 사고, 문제 해결력, 협동력 같은 구체적인 항목으로 분류해 평가하고 있다. 승진을 위해서는 동료의 성장을 위해 내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문화, 새로운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고 수용의 관점에서 배움을 받아들이는 인재가 우리 (사)땡스기브의 공간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리라 굳게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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